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과거사 청산 문제 (문단 편집) === 역사관 === 이 문단은 [[일본 제국]]이 [[나치 독일]]에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 제국]]과 [[나치 독일]]에 함께 대응하는 개념이라는, 즉 [[대공황]] 이후의 일본이 독일의 파시즘과 흡사한 전체주의 국가라는 설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일본 제국]]과 일본군이 각각 [[독일 제국]], 독일 제국군에만 대응한다고 보는 관점 역시 병렬적으로 존재하며, 이 관점을 채택할 경우에는 애초에 나치 독일과 일본의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천황제 파시즘]] 항목 참조.] ## 아래 두 인용문은 https://namu.wiki/thread/AdaptableCourageousUpbeatKettle 토론의 합의에 따라 고정되었습니다. >아프리카 나미비아를 방문 중인 하이데마리 비초랙-초일 독일 대외원조개발부 장관은 13일 독일 대사관에서 나미비아 헤레로 부족 대표들과 만나 "독일은 헤레로 부족에게 특별한 책임이 있다"며 [[나미비아 학살|과거 식민 시절 잘못]]을 사과했다. (...) 그러나 독일 정부는 이 사건이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및 보상과는 다른 문제라고 이를 반박하면서 공식 사과와 보상 요구를 거부해왔다. >---- >[[https://www.yna.co.kr/view/AKR20040814000400082|1백년전 잔혹한 식민통치 역사에 시달리는 독일]] >정리하건대, 독일의 위와 같은 성명은 자국이 천명하듯이 침략이나 식민지배의 과거사와 관련하여 이를 진지하게 성찰, 실천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즉, 기존에 독일이 구축한 전향적인 국제적 이미지도 사죄하고 청산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거나 [[독일 재통일|독일 통일]]을 위하여 자세를 낮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대상 국가 및 민족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구축하였다는 인상을 불식시키기 어렵다.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50432|독일의 전후 배상 실행에 관한 최신 연구: 나미비아 등 구 식민지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깔끔하게 청산했다는 이미지로 인해, 각종 한국 매체에서 일본의 태도를 비판할 때 모범 답안으로 독일이 자주 제시된다. 그러나 후술되어 있듯 독일의 과거사 청산을 자세히 뜯어보면 대중들의 인식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다. 위에서 언급했듯, 독일이 나치즘을 흑역사로 여기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일본군 위안부]] 등의 전쟁범죄와 [[가미카제]], [[가이텐]] 등 인명 경시는 분명하게 흑역사로 여기고 있다.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과 별개로 [[난징 대학살]]이 존재하였다는 점은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에서 [[위안부 문제|위안부]]가 일본인을 제외하면 [[한국인]]이 많았다는 점,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졌다는 점, 군의 관여 하에서 존엄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는 점,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되었다는 점, 위안소의 설치와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하여 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고 사과했다.[* 일단 공식적인 차원에서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등을 계승한다는 태도이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공식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현 일본 정부는 [[유엔|UN]]에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망언을 내뱉으면서 고노 담화의 내용을 전면으로 뒤집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인다.] 아시아 각국이 피해를 입은 전쟁범죄들에 대해서는 [[무라야마 담화]]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즉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일어난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도 독일 정부도 모두 공식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한다. 그리고 일본은 [[간 담화]]를 통하여 한일병합이 한국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사과하였다. 문제는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생전에 이런 담화들을 표면적으로만 계승하는 척 하기 급급했으며, 후임자인 [[스가 요시히데]] 역시 극우는 아니지만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는 점이다. [[2020년대]]에 들어 자민당 내 온건파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집권한 이후로는 일본 극우를 비롯한 역사왜곡 세력의 영향력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닌데, 2023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했을때 입헌민주당 당 대표 이즈미 겐타는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초계기 문제]]와 [[평화의 소녀상]] 관련한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 입헌민주당은 소녀상 철거를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한다.[[https://www.khan.co.kr/world/japan/article/202303172114025|#]]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식민주의 문제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이였던 [[일본 제국]]의 명백한 [[전쟁범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인 입장에서 이러한 입장이 좋게 보이기는 어렵다. 독일은 기민련 등 주류 보수주의 정당들 조차 나치 관련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자국의 만행을 대하는 양국의 태도를 비교하자면, 독일은 나치 독일 때 벌어진 잔혹한 행위들을 숨기지 않고 낱낱이 자세히 밝히며 어떠한 변명 없이 자신들의 잘못이라는 점을 분명하고 철저하게 교육한다.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범죄 행위에 대해 언급을 하긴 하지만 비교적 성의없이 넘어가며 잘못에 대한 가치판단은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일본 또한 공식적으로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원폭 투하 등 자국 피해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세하게 가르침으로써 은근슬쩍 피해자인 듯한 뉘앙스를 강하게 띄우는 편이다. 또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유감 성명과 별개로 [[이시하라 신타로]]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 정치인들이 과거 만행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등 제도권 차원에서의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도 독일과의 차이점이다. 독일은 일부 [[네오 나치]]의 소행은 있을지언정 적어도 제도권에 속한 유력 정치인이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나치의 만행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독일은 매년 공식적 인정과 사과를 반복하며 체코를 침략한 날과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일인 9월 1일, 그리고 종전날인 5월 4일 연속적으로 전쟁범죄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으며 9월 1일엔 아예 공식적 행사에선 전쟁으로 인해 학살된 무고한 타국 국민들에게 묵념하는 의식을 치른다. 또한 2018년 9월 1일 독일-폴란드 친선경기에서 일부 독일 관중들이 나치의 공식 구호인 Sieg Heil을 외치자 선수단이 국민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공식적인 규탄성명을 냈다. 심지어 독일 국방군마저도 나쁜 것은 모조리 [[나치 친위대]]가 한 짓이라며 미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민간 차원에서 볼 경우 옛 일본군에 대한 현 일본인들의 생각처럼, '나라를 위해 싸운 젊은이들'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며, [[전체주의]] 등의 사상과는 선을 그으려 하는 시선이 전후 직후에 강했으나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어린나이에 목격한 세대와 그들로부터 그 참혹함을 직접 들은 세대가 주류가 된 1980~90년대에는 청중년층을 중심으로 국방군 미화 시선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을 표현했고 국방군 무오설의 최초 독일인 신고자도 바로 1982년에 나왔다. 더 나아가 1983년부턴 국방군 무오설의 대표주자 롬멜 신화에도 정면적 도전이 이루어졌고 아예 1999년에는 롬멜 박물관 예산 삭감, 2000년에는 베를린시청 롬멜공적비를 철거했으며 통일 후 공식 교육과정을 비롯한 모든 입장에서 독일국방군의 범죄까지 함께 중요 교육과정으로 포함하며 중등교육과정이상에서 반드시 독일인들의 만행이라는 주제로 독일국방군의 죄목도 명백히 인정한다. 또한 현재 독일 국방부 제2차 세계 대전 백서를 비롯해서 연방군 교육지침에 국방군 전통 계승을 부인하며 범죄 참여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들과 어느정도 선을 그어두려고 노력하며 연방군 내부에서 극우 사상에 상당히 민감하게 대응한다. 민간 차원에서 위에 지적된 관점의 경우 팽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앞의 전제 조건이 따로 있었다. 국가사회주의라는 어리석은 사상에 물들어 정의롭지 못한 국가를 위해 어리석게 목숨을 던져 싸운 젊은이들이라는 게 상당수의 입장이고 민간차원에서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어찌하여 저렇게 어리석게 목숨을 버렸을까 하는 동정적 시각이 오히려 더 다수이다. 하지만 전쟁 당시 생존했던 이들과 국방군 출신 장교들이 제창한 국방군 무오설이 극우 성향이 강한 구 동독 지역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 현 독일의 사회 문제이다. 종합하면 2차 대전을 일으킨 추축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분명 독일이 일본보다 더욱 전향적이며 국방군의 역시 나치와 완전하게 선을 긋는 게 불가능하기에 독일 내에서도 자정 작용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독일 제국군]]으로 시선을 돌리자면, 이들에 대한 독일인의 관점은 결코 모범 답안이 아닌데 독일 제국군은 그저 사상적 문제가 없는 평범한 독일군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계속 강조되지만, 이 문서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군은 [[독일 제국군]]과 [[독일 국방군]]에 함께 대응한다는 관점을 채택하므로, 당연히 독일 제국군에 대한 현 독일인들의 관점 역시 거론할 수 밖에 없다. 과거사를 철저히 반성한 독일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독일이 과거 식민지에 지원한 경제적 원조는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독립 축하금과 차관보다 미비하며 독일이 식민지에 배상한 사과는 한국이 [[일본 내각총리대신|일본 총리]]들에게 받아낸 담화만 못한 수준이다. 독일은 자신을 패망하게 만든 미영소 등 주요 연합국, [[폴란드]] 등 주변 피해국, 그리고 [[유대인]]의 모국 [[이스라엘]]에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들이 침략하여 지배한 [[식민지]]와 [[집시]]에 대한 사과는 미비한 수준이다. 헤레로 부족과 국제 인권단체와 역사가들은 유대인 대학살보다 훨씬 앞서 일어난 `독일인에 의한 최초의 인종 대량학살'인 이 사건이 제대로 조명받거나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유대인 피해자들이 홀로코스트 배상금을 받은 것처럼 오바헤레로족과 나마족 역시 같은 처우를 받는 방법 역시 고심 중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040814000400082|1백년전 잔혹한 식민통치 역사에 시달리는 독일]][[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7388110|나미비아 대학살: 독일이 여전히 비판 받는 이유]]] 다만 이쪽에서 독일을 조금 옹호하자면, 독일에 대한 서구인들의 비판은 2차 대전을 일으킨 [[추축국]]으로서의 역사와 전쟁 발발의 기반이 된 [[전체주의]], [[군국주의]], [[인종주의]] 등에 초점이 맞추어졌으며 식민지를 착취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이야기로 가자면, [[영국]]이 되었든 [[프랑스]]가 되었든 아니면 다른 서유럽 국가들이 되었든 자신들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추축국들의 과거사 반성과 달리 제국주의 문제는 '그때는 외국도 그랬음'이라는 식으로 구 열강들이 어영부영 넘어가는 편이다. 달리 보면 제국주의는 당시 대세였고 [[중국]] 정도를 제외한 현 강대국들의 상당수는 제국주의 국가였던 만큼 파시즘처럼 독일, 이탈리아, 일본 이렇게 소수 국가에 특정할 수 없다. 현 강대국들은 거의 모두 공범인 상태인지라 독일도 어영부영 넘어갈 동기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서양 국가들도 나치 청산에만 날카롭고 제국주의는 자신들도 전적이 있으니 언급하지 않는 편이다.[* 영국의 쿠르드족 학살 방조, 프랑스의 [[알제리 학살]] 등만 보면 독일의 제국주의를 욕할 처지가 아니다. 오히려 식민제국의 규모와 식민지 경영 기간만 놓고 보면 나미비아 등 소수 지역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식민 경영을 한 독일에 비해 이들은 더 광범위한 만행을 오랫동안 저질렀다. 게다가 다른 서유럽 국가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벨기에]]는 콩고인들을 무참히 학살했고 [[네덜란드]] 역시 나치에서 해방되지 얼마 안되어 자국 재건용으로 지원받은 마셜플랜 자금을 인도네시아 재정복에 사용하려 하였고 수년간 인도네시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또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도 이 문제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데 일례로 포르투갈은 1960년대에 인도가 [[고아(인도)|고아]] 지방에 대한 반환을 요구했을 당시 자국의 힘으로 식민지를 지키지 못할 처지가 되자 무려 나토에 인도로부터 고아를 지켜달라고 탄원했다. 이렇듯 제국주의, 식민주의 담론에 있어서는 서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원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독일이 그나마 제국주의 자체에는 공식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일례로 빌헬름 카이저 과학연구소는 제국주의 사상이 이름에 반영되었다는 이유로 영구 사용금지 처분되었고 현재 막스플랑크 과학연구소로 개명되었다. 이처럼 독일은 다른 열강 국가들과 달리 자신들이 저지른 제국주의적 만행에 대해서 문제 의식 정도는 가진다. 또한 독일 공식 교육과정에서도 '제국주의는 힘으로 힘없는 국가의 자유를 박탈하고 그들의 국민에게 합법적으로 자유를 박탈하고 노동력을 착취할 권리를 가지게 하는 사상으로 우리 독일의 제국주의로 많은 식민지인들이 상처를 입었다'라고 명시하며 칭다오나 아프리카 침략 당시 악행에 대해서도 교육한다. 물론 배상 문제엔 '영국이나 프랑스도 안한 것인데 우리가 왜?'라는 입장을 은근슬쩍 드러내고 식민지배 자체의 불법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타 열강들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어찌되었든 이 문제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추축국, 연합국, 중립국 할 것 없이 제국주의를 펼친 서유럽 열강들과 일본, 미국, 러시아 모두가 반성할 문제이다. 이렇듯 현대 독일의 경우 설령 파시즘과 무관한 제국주의적 만행이라 하더라도 극우가 아닌 한 노골적인 [[역사수정주의]]는 삼가는 편이다. 또한 국제 역사학계에서도 제국주의 문제를 전체주의, 군국주의 문제와 기계적으로 동일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독일을 과도하게 미화할 필요는 없지만 일본과 다를 거 없다는 양비론 또한 적절하지 않다. 다만 독일도 난민 문제 등을 계기로 [[네오 나치|이를 부정하려는 세력]]이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9916282|#]]] 사실 이 문제는 2010년대 중후반 이후 기준으로 난민 문제 때문에 전 유럽이 우경화[* 이탈리아는 무솔리니 손녀가 상원의원을 하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 같은 인사가 세를 불리고 있으며 영국도 결국 난민과 이민자 배척 흐름에서 파생된 [[브렉시트]]가 통과되었다. 이에 대해 유럽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며 현 흐름에는 독일 정치가 그나마 제일 전향적이라고 평가받는다.]되고 있는 것의 흐름 중 하나이다. 독일의 경우 일본과는 달리 나치라는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뿐이지 옛 군대에 대한 태도를 거론하자면 이 문서에서는 일본군이 독일 제국군과 독일 국방군에 함께 대응한다는 관점을 채택하고 있으므로 독일이 잘 청산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 독일 교육과정이라든가 공식 정부 입장에선 국방군 무오설 같은 것도 일제 부인하고 있고 전쟁이란 그 자체로 독일인들이 무고한 민간인들과 타 국민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군국주의 및 전쟁범죄의 역사에 관련해서 일본에 비해 훨씬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기에 종합적으로 봤을 때 2차 대전기 벌어진 전체주의, 군국주의적 만행에 대해서는 일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이탈리아도 파시즘 청산이 비교적 부실한 편인데 중도우파 성향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전 총리]]가 무솔리니를 옹호하고, [[알레산드라 무솔리니|무솔리니 손녀]]가 [[포르차 이탈리아|중도우파 정당]]의 의원까지 하는 나라이다. 다만 이탈리아의 경우 거듭된 졸전과 이른 항복 및 비교적 경미한 전쟁범죄 등의 이유로 서구권에서도 존재감이 약하다.] 등 구 추축국보다 훨씬 잘된 편이고, 식민지 수탈을 비롯한 제국주의적 악행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는 영국, 프랑스 등 구 열강에 비해 그나마 전향적이지만 이상적인 수준은 결코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